[2013년 5월 뉴스레터]

Duane Gish(듀에인 기쉬) 박사님을 처음 뵌 것은 1995년 필자가 ICR(미국창조과학연구소)에서 대학원 첫 학기를 시작할 때이다. 대학원 학장이신 Ken Cumming 박사님께서 각 방을 돌면서 교수님들을 소개해주실 때 Gish 박사님 방에 들어설 때였다. 필자를 보며 의자에서 일어나 “Welcome!” 하시던 다정한 모습이 기억난다. 미국사람으로는 작은 키였다. 수수하고 단정하게 꾸며놓은 방과 책꽂이에 책과 함께 놓여 진화석들이 눈에 들어왔다.

1971년 Gish 박사님께서는 Henry Morris 박사님께서 설립하신 ICR(1970년 설립)에 합류하시며 창조과학 사역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디셨다. 특별히 진화론자와의 논쟁으로 유명하셨는데 “창조의 불독(creation’s bulldog)”이라는 별명을 받았다. 그만큼 창조를 지키는데 충실했다는 말이다. 이 별명은 다윈을 옹호하는 사람으로 유명했던 헉슬리(T. H. Huxley)를 ‘다윈의 불독’이라고 해서 그 대조로 붙여졌다. 그러나 다윈의 불독과 달리 Gish 박사님은 논쟁 도중에 정중함과 유머를 유지한 크리스천 신사의 품위를 잃지 않았다.

1961년 Henry Morris 박사님의 ‘창세기 홍수(Genesis Flood)’가 출판되며 현대 창조과학 운동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이때 미국에서 사역한 대표적인 두 분이 바로 Morris & Gish 박사님이다. 두 분은 수십 년을 함께 사역을 하였지만, 전달 방법에선 차이가 있었다. Morris 박사님께서 과학과 함께 성경을 변증하시는 분이라면, Gish 박사님은 과학만을 갖고 진화론자를 이겼다. Morris 박사님께서는 80권이 넘는 수많은 책들을 통해 사역하셨다면, Gish 박사님께서는 진화론자와의 논쟁과 세미나에 익숙하셨다. 어쩌면 각기 다른 접근법을 사용했지만, 사람들은 두 분 모두가 ‘성경이 사실이다’라는 동일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공감했다. 이는 두 분의 사역을 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경에 대한 견고한 믿음의 공통분모가 자연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ICR이 이룬 업적 가운데 가장 큰 것을 꼽으라면 “화석에서 진화론이 요구하는 중간단계가 없다”는 것을 학계와 일반인들에게 심어준 것이다. 실제로 1980년에 들어서면서 대표적인 진화론자들이 중간단계 화석이 없음을 인정하기 시작했는데, 이런 자세의 변화는 1970년대 ICR의 설립과 사역에 결코 무관하지 않다. 여기에 Gish 박사님의 역할은 결코 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화석에 대하여 정리하여 1985년 “진화론: 화석기록의 도전(Evolution: Challenge of Fossil Record)”이란 책을 저술했다. 이 책은 1995년에 “진화론: 화석은 여전히 No라고 말한다!(Evolution: Fossils Still Say No!”로 개정 되었다).  

Gish 박사님께서는 한국이 창조과학 사역을 시작하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셨다. 한국 기독교계가 아직 창조과학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하던 시절인 1980년 CCC에서 주관했던 세계복음대성회에서 Gish 박사님과 Morris 박사님이 함께 강사로 초청되었다. 그때 통역을 담당하셨던 송만석 장로님(당시 연세대 교수)과 김해리 권사님(당시 서울대 교수)께서 “우리는 거짓말은 통역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서 먼저 세미나를 하면 확인하고 통역하겠습니다”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숙소에서 통역자들 앞에서 리허설(!)을 하셨던 것이다. “내가 수십 나라에서 세미나를 했어도 리허설 해본 것은 한국이 유일해!” 이 말은 당시 두 한국분을 칭찬한 말이었다. 그 때의 Morris & Gish 박사님께서 뿌리신 씨가 한국창조과학회 설립에 결정적 역할을 했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한국은 창조과학도 미국을 통해 선교(!)받은 것이다.

필자가 ICR에 있을 때, 큰 입으로 늘 미소와 유머를 잃지 않으셨던 모습, 특히 연구소의 빈 방에 전등이 켜 있을 때면, “Save energy!”라고 말하며 전원을 끄셨던 모습은 기억에 남는다. 처음 ICR이 시작할 때 재정적으로 어려웠던 시절 절약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던 것이다.

ICR이 San Diego에서 Texas의 Dallas로 이전했을 때, 2008년 이전 감사 연회에서 Gish박사님을 뵈었다. 오랜만이기도 했고 86세의 노년이시기에 혹시나 해서 “절 기억하시겠어요?”라고 여쭙자, “물론이지, 재만, 기억하고 말고!”하시며 저희 사역에 대해 물어보셨던 기억은 잊지 못한다. 이때 자신의 책에 싸인을 해주시던 그 때가 마지막 뵈었던 모습이다(사진).

1960년 미국 고등학교 교과서에 진화론이 삽입되며 신앙의 위기에 들어섰을 때, 지혜와 담대함을 갖추셨던 신앙의 선배들이 있었다. 과학을 통해 진화론자들을 꼼짝 못하게 하셨던 Gish 박사님. 만약 이런 신앙의 선배님들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참으로 자랑스럽고, 그립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딤전6:12)

  • 이재만/창조과학선교회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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